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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피 한 잔 마시러 은행에 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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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은행이 단순히 금융 거래만을 처리하는 곳이 아닌 일상을 즐기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은행은 커피를 마시며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NH투자증권의 ‘N2, 나이트(NIGHT)’와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의 ‘올리브 라운지’다.


    스마트폰 하나로 주요 금융 서비스를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은행 영업점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2024년 3월 매일경제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의 국내 영업점 수는 최근 5년간 약 20%가량 줄었다. 
    오프라인 점포가 점차 사라지는 반면 디지털 거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전체 개인 신용 대출 6만 4000여 건 중 약 95%인 6만 1000여 건이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즉 대부분의 신용 대출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처리된 것이다. 이제 은행 서비스를 생각할 때 회사나 집 근처의 오프라인 지점이 아닌 스마트폰 앱이 먼저 떠오르는 시대가 됐다.




    디지털 세대의 새로운 투자 방식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은행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투자증권회사도 비슷한 흐름이 다.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투자 정보를 얻기 위해 굳이 증권사의 오프라인 대리점을 방문하지 않는다. 
    한때는 투자증권사가 발행하는 매거진 형태의 소식지를 정독하거나 오프라인 대리점을 찾아 재테크 상담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투자자의 모습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대부분 오프라인에 의존하지 않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재테크 정보를 얻는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는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투자 정보를 탐색하거나 신뢰하는 인플루언서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 정보를 얻고 학습하는 것을 선호한다.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의 ‘MZ세대 특성 심화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 관련 정보를 확보할 때 디지털 세상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를 신뢰한다는 응답이 MZ세대의 경우 20.1%에 달했다. 
    이에 국내 증권사들은 대리점 수를 매년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줄어든 전체 증권사 지점 수는 100개가 넘는다. 




    투자와 성장을 융합한 새로운 시도 ‘N2, 나이트’

    비대면 금융 서비스가 일상이 되면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발길을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리려는 금융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20, 30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를 ‘자기 중심적(Me-Centric)’으로 파악하고 이를 ‘투자’의 키워드로 바꿔 나가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단순한 상품 설명이나 투자 상담을 제공하는 오프라인 대리점으로는 더 이상 고객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시대다. 이때 투자를 자기 성장이라는 테마로 재해석해 ‘나는 투자한다. 나는 성장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실험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큰 호응을 얻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24년 6월 성수동에 오픈한 400평 규모의 팝업스토어 ‘N2, 나이트(NIGHT)’다. ‘자기 성장의 시간, 밤에 투자하세요’라는 독특한 슬로건 아래 이 공간은 투자와 성장이 하나로 맞닿은 경험을 제공하며 젊은 세대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다양한 공간 세션으로 구성했는데 그중 ‘N2, 파크(PARK)’는 도심 속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휴식 공원으로 약 30여 그루의 나무가 둘러싸고 있는 개방형 공간이었다. 또 ‘N2, 나이트 반(NIGHT BARN)’은 발리 우붓의 요가 반을 그대로 재현한 콘셉트로 NH투자증권이 선보인 웰니스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자신의 체질을 진단한 후 그 결과에 맞춘 건강식을 제공받는 특별한 경험을 누렸다. 
    낮에는 이처럼 웰빙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밤이 되면 자기 성장을 위한 명상 테라피 ‘힐링 나이트’ 프로그램이 펼쳐졌다. 7명의 전문가가 이끄는 명상 세션과 함께 건강한 저녁식사를 제공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시간을 선사했다. 
    이러한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은 디지털 네이티브 사이에 잘 알려진 인도 전통의학 아유르베다를 기반으로 건강한 식습관과 마음 습관을 키워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슈리베다 웰니스 스튜디오와 협력해서 만들었다. 
    이 외에 ‘N2, 스튜디오(STUDIO)’에서는 다양한 자기 성장 목표를 탐색하고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로잉 나이트(GROWING NIGHT)’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러닝 코칭부터 인문학과 투자 강연까지, 자기 계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문객에게 제공했다. 
    결국 N2, 스튜디오를 돌아보면 건강과 자기 계발에 대한 투자처럼 자산에 대한 투자도 나를 성장시키는 일상의 일부라는 NH투자증권의 핵심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이 공간은 오픈 2주 만에 1만 5000명이 넘는 방문객을 기록했으며 예약제로 운영된 프로그램은 모두 조기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휴식과 금융을 잇는 ‘올리브 라운지’

    이러한 단기적인 팝업스토어 외에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점포를 색다르게 운영하려는 금융회사의 시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많은 주목을 받은 공간 중 하나가 일본의 미쓰이스미토모은행(SMBC)이 2024년 5월 라이프스타일 서점으로 유명한 츠타야와 손잡고 시부야 중심부에 오픈한 ‘올리브 라운지(Olive Lounge)’다.
    이 공간은 금융에서 강점을 지닌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혁신적인 공간 창출에 탁월한 츠타야와 손잡았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츠타야는 1983년 DVD와 CD 대여점으로 시작해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서점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2011년 도쿄에 개장한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는 ‘책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복합 문화 서점으로 1만 2000㎡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츠타야는 이러한 혁신적인 서점들을 하나둘 오픈하며 책을 좋아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승승장구하며 새로운 서점 문화를 만들어 가던 츠타야도 2012년을 기점으로 1400여 개에 달하던 점포 수를 800개 가까이 줄이는 등 위기에 직면한 바 있다. 이는 독서 인구 감소와 관련이 깊다. 1989년부터 약 20년 동안 ‘2조 엔 산업’으로 불리며 꾸준히 성장하던 일본 내 책 매출이 2019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츠타야는 새로운 돌파구로 ‘셰어 라운지(Share Lounge)’를 열어 책이 아닌 ‘머무는 경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마침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역시 새로운 오프라인 은행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 것이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 홈페이지의 올리브 라운지 소개 페이지를 보면 그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운영하고자 하는지 엿볼 수 있다. 올리브 라운지는 은행일 뿐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오피스이자 여유롭게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즉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올리브 라운지가 단순히 금융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을 넘어 올리브 나무 그늘 아래에서 다양한 방식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하기를 바랐다.
    올리브 라운지 1호점은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누릴 수 있는 도쿄의 핵심 시부야역 바로 인근에 위치해 있다. 올리브 라운지라는 영문명이 적힌 큰 입간판 앞에 서면 이 공간의 용도를 자세히 설명하는 벽면 안내가 눈에 들어온다. 
    일하고(Work) 사람을 만나고(Meet) 대화를 나누고(Talk) 휴식을 취하며(Relax) 원할 경우 자산 관리에 대한 상담(Money Consult)과 투자 공부(Money Lesson)를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소개된다. 공간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총 3개 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인테리어는 올리브 색을 중심으로 통일감을 준다. 
    1층에 들어서면 전형적인 은행의 모습과는 달리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라운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부야 지역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누구라도 편하게 머물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넓고 개방적인 공간이다. 한 켠에는 스타벅스도 자리 잡고 있어 다양한 음료와 음식을 즐기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층 중앙에는 100인치 크기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는데 이 모니터를 통해 올리브 라운지의 핵심 가치가 끊임없이 전달된다. 오전 7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이용할 수 있는 ATM 기계도 있어 언제든지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 옆에는 리셉션이 자리하는데 일반적인 은행 업무 시간 동안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직원들이 상주하며 방문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이곳은 간단한 은행 업무를 대면 방식으로 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영감과 휴식을 선사하는 금융 복합 공간

    올리브 라운지 2층에는 츠타야가 기획한 셰어 라운지가 자리 잡고 있다. 1층이 시부야를 방문한 누구나 자유롭게 들러 커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며 간단한 은행 업무까지 볼 수 있는 공간이라면 2층은 보다 깊이 있는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업무를 처리하거나 책을 읽으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시간제 기반 공유 오피스다.
    셰어 라운지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되며 기본적으로 1시간 이상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 서비스를 1650엔(약 1만 5000원) 정도에 제공한다.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는 1일 이용권은 약 5500엔에 구매할 수 있으며 5명 정도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처럼 시간 단위로 필요한 만큼만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간이 마음에 든다면 월간 구독 형태로 장기 이용할 수도 있다. 구독자는 할인 혜택을 받아 더욱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셰어 라운지에 들어서면 다양한 즐길 거리와 함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책들, 오브제들이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오랜 기간 라이프스타일 서점을 운영해온 츠타야가 큐레이션한 책들이 잘 정돈돼 있다. 
    그 밖에도 시리얼, 간단한 베이커리류, 우유, 주스 등을 언제든 즐길 수 있도록 넓은 탕비실이 마련돼 있으며 모든 먹거리는 무료로 제공된다. 만약 맥주나 와인 같은 주류를 즐기고 싶다면 약간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다양한 방문객들의 필요를 고려해 총 125석 규모의 좌석은 각기 다른 스타일로 제공된다. 안락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거나 여유롭게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편안한 좌석부터 혼자 조용히 집중해서 작업할 수 있는 좌석까지 방문객들은 자신의 목적에 맞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올리브 라운지에서는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주관하는 다양한 금융 관련 행사들이 꾸준히 개최된다. 금융 서적을 집필한 유명 작가를 초청한 북토크나 인기 있는 금융 인플루언서의 강연이 열려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한편 이 공간에서 제공되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 ‘올리브 카드’로 결제하면 결제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리워드 포인트가 적립돼 추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올리브 라운지를 반복해서 방문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금융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더 깊이 있는 상담을 받고 싶어질 수 있다. 이러한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전문적인 금융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공간도 지하에 마련했다. 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소개하거나 자산 관리 및 투자와 관련된 개인 맞춤형 조언을 제공한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단발적인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는다. 시부야 1호점의 성공적인 론칭에 이어 츠타야와 함께 2024년 10월 시모타카이도에 두 번째 올리브 라운지를 오픈했다. 앞으로도 일본 전역에 약 40개의 매장을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금융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공간의 재발견, 금융의 변신

    디지털 전환 시대에 오프라인 금융 대리점은 정말 사라질 것인가.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사례처럼 오프라인 금융 대리점은 단순히 금융 거래의 공간을 넘어 온라인이 제공하지 못하는 특별한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는 오프라인 공간에 방문할 가치를 더하기 위해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력해 새로운 공간적 시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앞으로 “우리 커피 한 잔하러 신한은행 서울역 지점에 갈까” 혹은 “우리 공부하러 NH투자증권 명동점에 가자”라는 말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