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전은 찬성과 반대가 활발하게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을 때 탄생한다.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현실에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 새로운 혁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한 번 경쟁에서 뒤처졌지만 계속된 도전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도 전기차에 대한 논의는 진행형이며 기업들은 새로운 행동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모습들을 접한다. 과거의 경험과 데이터에 근거해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 미래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통계학 수업 시간에 과거의 절편과 데이터로부터 도출된 기울기에 근거해 회귀선을 데이터가 없는 미래의 시간까지 계속 연장하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회귀선을 연장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망설여질 때가 많다. 과거의 시작점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저 위에서 시작했지만 계속 하락 추세를 보이는 사업들이 그렇고 또 제로에서 시작했지만 상상 이상의 성과를 내는 스타트업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메리어트호텔 그룹은 80여 년에 걸쳐 약 100만 개의 호텔 방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는데 에어비앤비는 불과 8년 만에 비슷한 수의 숙소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시작점의 문제가 아니라 기울기, 즉 증가하는 속도의 차이다. 그저 일직선으로 동일한 기울기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가파른 속도로 계속 변화하는 기울기를 갖는 것이다.
필자의 주변에도 많은 지식인들 혹은 사업가들이 있어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많다. 마치 미래를 꿰뚫어 보는 것같이 해박한 지식과 나름의 데이터를 근거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또 다른 내용을 가지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그런 미래의 예측이 아닌 새로운 일들을 혹은 하던 일들을 새로운 방법으로 바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미래는 예측에 의존하는 미래가 아니라 예측과 함께 새로 만들어 가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2002년 당시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민간 우주개발 기업인 스페이스엑스를 설립할 때만 해도 세상은 그의 허황된 계획에 찬사보다는 물음표를 더 많이 보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난 5월 말 스페이스엑스는 최초의 민간 우주선을 우주정거장에 도킹시켰다. 그리고 8월 초 62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2명의 민간 우주비행사들이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이번 글에서는 과거 제기된 무거운 납축전지와 배터리 충전 시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혁신의 대명사로 주목받고 있는 전기차 시장을 통해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보고자 한다.
지난해 딜로이트의 전기차 시장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천 대밖에 되지 않던 전기차 수가 2017년 처음으로 100만 대를 넘어섰고 2018년에는 200만 대 이상 판매되었다. 보고서는 만약 전기차를 소유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내연기관 차량과 비슷해진다면 2022년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또 블룸버그는 2040년 전 세계 전기차 대수가 약 56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올해 한국의 전체 차량 등록 수의 약 2배가 넘는 수치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발표한 ‘전기차의 전쟁’이라는 아티클에 따르면 중국은 가장 큰 전기차 시장으로 현재까지 약 120만 대 이상의 누적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큰 시장은 미국으로 약 76만 2000대다.
그런데 이러한 전기차 시장의 규모는 단순히 차량의 가격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기차에 대한 지원 정책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전기차 구입 시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 취득세 등 다양한 세금 혜택 같은 것이다.
정부의 지원 정책 외에도 지역의 석유 가격에 따라 전기차 시장 형성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석유 값이 매우 비싼 노르웨이의 경우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39.2%로 매우 높다. 반면 미국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기는 하지만 아직 석유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2018년 기준으로 전기차는 전체 차량 1700만 대 중 약 30만 대(1.7%)에 불과하다. 물론 이 외에도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의 숫자 등이 구매자들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발생한 금융위기 당시 자동차 산업이 가지고 있던 생산량과 시장 수요량의 차이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가 전기차 분야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수요가 증가한다는 장밋빛 예측에도 불구하고 많은 완성차 조립업체들이 앞다투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게 되면 시장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 능력을 가지게 되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GM에서 테슬라까지, 전기차의 역사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탄소 제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서 GM은 ‘EV1’이라는 전기차를 출시했지만 시장에서 실패하고 만다. 혹자는 미국의 거대한 석유 산업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이 캘리포니아의 탄소 제로 정책을 무력화한 것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납축전지를 사용해 고작 50마일 정도를 주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수요 측면에서도 실패의 이유를 찾아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당시에는 현재보다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기반 시설도 부족했을 테니 말이다.
이후 1997년 토요타는 전통적인 내연기관과 니켈수소 전지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를 출시하고 전기차로서는 처음으로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전기차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의 가격이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대량생산 체제를 갖출 수 없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차량만을 생산하기 위한 추가적이고 독립적인 생산 라인을 구축하기보다는 하이브리드와 다른 차종을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조립 라인을 구축해 라인 신설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서도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실제로 필자가 방문했던 토요타시티의 한 공장에서는 프리우스와 당시 토요타 생산 차종 중 가장 저렴한 Q5가 한 라인에서 동시에 생산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08년, 테슬라가 첫 번째 전기차인 ‘로드스타’를 발표했다. 이 차가 바로 온전히 배터리로 주행하는 첫 번째 전기차(Battery Electic Vehicle : BEV)라고 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어 2012년 ‘모델 S’를 출시했고 지속적으로 성능을 향상시켜 580마력의 힘을 자랑하는 포르쉐 911 터보 S 모델을 능가하는 가속력을 전기차에서 구현했다.
한편 지난 몇 달 뉴스에서 흥미롭게 다루었던 기사 중 하나가 현대기아차 그룹의 3세대 리더가 삼성, LG, SK 등 다른 대기업 리더들과 만나 전기차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사를 나눈 것이었다. 전기차의 가장 핵심 부품이 배터리이기 때문에 완성차 기업의 리더가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업들과 만났다는 사실에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전기차 시장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준비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기차의 핵심, 배터리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1차 전지와 2차 전지로 구분된다. 1차 전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유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해야 한다. 반면 2차 전지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형태로 한 번 구입하면 계속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다. 당연히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는 2차 전지다.
그런데 한 개의 배터리가 담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제한되어 있으니 자동차를 움직일 만한 힘을 가지려면 매우 많은 용량이 필요하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를 ‘셀’이라고 부르는데 테슬라에 들어가는 파나소닉 배터리의 경우 일반적인 AA 사이즈 배터리와 모양은 같고 크기가 조금 큰 셀을 약 7100개 장착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셀을 하나하나 연결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 연결 부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일정 개수의 셀들을 그룹 지어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컨테이너에 묶어 삽입하게 되는데 이를 배터리 모듈이라고 부른다.
테슬라의 경우 444개의 셀로 이루어진 모듈 16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모아 놓으면 셀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온도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16개의 모듈로부터 나오는 열을 식힐 수 있는 통제 장치가 필요하고 온도를 감지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이렇게 모듈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모니터링하고 통제하기 위해 집합체로 만든 것을 팩이라고 한다. 통상 팩은 자동차의 하부에 평평하게 깔아서 하나로 관리한다.
비용적 측면에서 볼 때 전체 팩의 비용 중 셀이 75% 정도를 차지하고 모듈 컨테이너가 약 11%, 나머지 14% 정도가 추가적으로 팩의 관리 시스템을 생산하는 데 소요된다. 그러므로 셀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활동이고 다음이 팩이며 모듈의 생산이 상대적으로 가장 부가가치가 적다고 할 수 있다.
테슬라가 미국 네바다주에 기가 팩토리를 만들면서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려고 하는 이유도 배터리 팩에서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셀의 대규모 생산을 통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전기차에서 배터리 관련된 부분이 차지하는 비용이 약 77%에 달하고 소재 비용만으로도 40~50% 정도라고 하니 배터리 비용 절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한편 최근 전기차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LG화학의 배터리다. 포드와 GM, 크라이슬러 등에서 LG화학의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최근 테슬라에서도 LG화학의 배터리를 도입하면서 파나소닉이 테슬라의 공급망에서 가지는 중요성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이밖에 AESC는 닛산의 ‘리프’ 모델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도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각각 4위와 7위를 점유하고 있다. 만일 이야기가 잘 되어 배터리를 생산하는 한국의 3사가 협력한다면 세계 제1의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새로운 뇌관인가 아니면 해결책인가
GM이 개발한 최초의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밀려 무대에서 사라졌지만 이후 전기차는 배터리 등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최근 전기차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공해를 줄일 수 있으면서도 이동수단에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는 기술로 인식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비싼 가격이다. 현재 각국에서 정부의 지원을 통해서 시장을 넓혀가고 있지만 정부 보조금이 줄어들어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다면 과연 소비자들이 대의를 위해 본인의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큰 의문으로 남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전기차의 가격이 현재 내연기관 차량의 가격 정도로 하락해야 하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는 경쟁 기업들끼리도 서로 협력해 혁신을 이루어 내려는 시도가 나오고 있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성능뿐 아니라 안전성도 함께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도 말들이 나오고 있다. 운행 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당연히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적지만 차체와 배터리의 생산 및 폐기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면 전기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효과는 거의 없거나 약 10% 정도밖에 안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많은 예측가들이 전망하는 것처럼 현재 전기차의 수요가 급증한다고 할 때 배터리를 충전할 전기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대형 화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도시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화력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으로 이동해 배출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화석연료의 고갈로 인해 전기차가 대체 기술로 인식되기는 하지만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질인 리튬의 공급에도 한계가 있다. 세계적으로 리튬의 매장량은 약 1000만 톤 정도인데 몇몇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어 자원의 무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이렇게 전기차는 내연기관차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체 기술로 대두되는 한편으로 다양한 반론들도 공존하고 있다. 과연 전기차는 문제의 해결책일까, 아니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될까. 결과는 여러 가지 의견들을 종합해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